[책] [독후감] [2015- 세계문학으로의 초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대성당 - 레이먼드 카버(CATHEDRAL, Raymond Carver)

Jun 5, 2015 | Jun 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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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oon.With.Wisdomtr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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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잃은 상실에서 오는 충격과 고통에 이 터질 것 같은 괴로움을 어딘가에라도 절규하며 소리 질러야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던 상태에 있던 부부에게도, 사랑하는 아내 때문에 불안해하고 자신이 보기엔 자신보다 훨씬 더 깊은 유대를 오랫동안 형성해 온 것 같은 장님에게 날이 잔뜩 선 고양이와 같이 상태로 긴장하며 불안과 질투를 느끼는 남편에게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소하고 소박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인 그 무엇 - 따스함으로 얼고 날이 선 마음에 온기를 더해주어 서서히 녹아내리게 하고 풀어주게 되는- 그런 공명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눈앞에서 직접 일어난 사건을 목격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세세한 배경 묘사와 디테일에 나는 두 단편 소설 속에 모두 순식간에 흡입돼 버렸다. 이 레포트에서는 두 소설 중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 대한 감상에 더 중점을 두고 쓰고자 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한 젊은 부부가 그들의 아들인 스코티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겪게 되는 두려움과 불안함 등의 감정에 대하여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 큰 상황을 맞닥뜨린 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감정의 흐름과 그에 대한 묘사가 너무 사실적이고 또 실제와 같아서, 글을 읽는 동안 아이가 없는 나조차 그 상황을 직접 겪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주차장을 응시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이제 서로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하도 걱정해서 온몸이 저절로 투명해진 것처럼.” 114p,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문학동네 120P, 129, 130P의 모든 문장
 
사실 빵 장수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너무나 어이없었을 것이다. 그는 의례 그러하듯 케익 주문을 받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밤 낮 없이 이뤄지는 작업 가운데 따로 시간을 빼서 주문 제작 케이크를 만들어 두었지만 정작 케익 주문자는 예약일이 오래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 무례한 고객들은 예약일로부터 갑자기 사흘 뒤에서야 자신을 찾아오더니 일면식도 없었던 자신에게 요 며칠 동안 본인들이 겪었던 모든 분노와 서러움과 고통을 칼날이 선 말들로 쏟아 낸다.
그러나 빵장수는 부부의 분노를, 고통을 잔잔하고 조용하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안아준다. 그는 원래부터 표정 변화가 별로 없는 부류의 사람인 것 같이 보일 정도로, 어떤 일에도 무심한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자신의 가게를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밤 낮 없이 잠도 줄여가며 그저 성실히 일해온 사람이었다.
“나는 빵 장수일 뿐이라오. 다른 뭐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소. 예전에, 그러니까 몇 십 년 전에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을지 몰라요.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일들이니까 나도 잘 모르겠소. 어쨌든 내가 어땠건 이제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거요. 지금은 그저 빵 장수일 뿐이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 일들이 없어지는 건 아니겠지요. 아무튼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140p,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문학동네
그의 빵 장수라는 해명은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둥- 하고 울린다.
 
 
삶을 살며 쉬이 감당하기 어려운 너무나 큰 상실을 겪은 부부에게 그가 보여준 진심 어린 유감과 포용, 따스함은 며칠이 지나도록 식음을 전폐 했던 부부가 무엇인가를 먹게 만든다.
“ 그는 기다렸다. 그들이 각자 접시에 놓인 롤빵을 하나씩 집어먹기 시작할 때까지 그는 기다렸다. 그들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오. 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에 있으니.” 141p,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문학동네
 
무엇인가를 먹는다는 것은 굉장히 건강한 행위다. 누구나 아프거나 정신이 온전치 않거나 우울하거나 힘들 때는 식욕이 사라지게 된다. 스코티가 차에 치인 시점부터 몸과 마음이 전부 슬픈 허기짐으로 가득 찼던, 제대로 무엇인가를 먹는 것 자체가 불가능 했던 부부에게 그는 살아있는 온기이자 위안인 갓 만든 따뜻한 롤빵을 건낸다. 빵장수는 부부가 스스로 먹을 때까지 강요하지 않고 그저 기다려 준다. 그리고는 그들을 바라본다. 걱정과 배려의 마음을 같이 품으며, 아빠처럼 엄마처럼.
그리고는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준다. 그의 외로움과 그 무렵 그가 겪은 그의 인생의 회한과 무력감에 대하여. 이런 나날 들을 아이 없이 보내는 것이 어떤 건지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부는 조금씩 위안을 얻는다. 빵집 주인도 내내 속에 품어온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 만으로도 작은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부부는 스코티를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 이후부터 엄청난 무서움, 두려움, 불안함, 자신의 아들이 이렇게 된 것이 마치 자기들 탓인 것 같은 마음에서 오는 미안함 등의 온갖 부정적인 감정의 해일에 휩싸여 버린 상태였다.
그리고는 결국 자신들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가장 소중했던 첫 아이의 죽음을 직면하게 된다. 이로부터 밀려오는 자신에 대한 것 일지, 인생 전체에 대한 것 일지, 아니면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에 대한 것 일지 알기 어려운 복잡하고 마구 엉켜버린 상처 더미의 세계 속에서 그들은 분노, 서러움, 고통으로 범벅된 채로 갇혀버린다. 그런 상태에 있던 부부를 어루만져준 것은 그 나름대로 인생을 지나 오며 자신의 생의 무게를 버텨온 빵장수의 따뜻함 이었다.
누군가의 어른이자 부모님이었던 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그러한 따뜻한 정과 사랑이었다. 아들의 세상에서 스코티부부는 누군가를 책임지는 울타리와 같은 엄마, 아빠였을지 몰라도 자신들의 인생에서는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서툰 인간들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신체적으로는 어른이 되겠지만 어른으로 완성되는 어른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완성은 죽음 아닐까. 부부는 여전히 불안하고 두렵고 무섭다. 우리가 겪는 인생이 두 번째 겪는 인생이 아닌 것과 같이 부부가 엄마, 아빠로서 겪는 인생도 두 번째 인생이 아니다. 우리가 모두 그러하듯 그들 또한 처음 겪는 생이다. 그래서 서툴고 그래서 두렵고 무섭지만, 그렇게 하나하나 이뤄온 삶이라 더 소중하고 애틋한 인생이었을 것이다.
사람이던 동물이던 잔뜩 움추러든 채 날을 세우고 있는 존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한 없는 우울함에 빠져있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도 사랑이다. 두 단편소설은 모두 우리 삶에 필요한 그러한 작은 온정과 따뜻한 관심 그리고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12월은 성탄절이라는 큰 이벤트도 있고 또 연말이기에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마음을 톺아볼 수 있어서 내가 꽤나 좋아하는 달이다. 가정의 달인 5월 보다도 나는 12월에 더 가족의 따뜻함, 소중함 그리고 사랑을 느낀다. 곧 2015라는 년도 끝나게 된다. 역시 12월의 남은 하루하루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들과 같이 사랑과 따뜻함을 나누며 보내야겠다. 그런 따스함과 온정 속에서 너와 내가 같이 치유 받고 따뜻하게 강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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