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독후감] [2015- 세계문학으로의 초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코네티컷 - 앤드루 포터

Jun 5, 2015 | Jun 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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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oon.With.Wisdomtr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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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코네티컷

 
1.     오랜만이다. 짧은 단편 이건 장편 이건 간에 앉은 자리에서 한 번의 미동 조차 없이 모든 글을 단 숨에 읽어내려 가게 되는 소설을 만난 것은. 그렇게 책을 많이 읽지 않는 나는 아직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것 같은 나에게 잘 맞는 작가 또는 장르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데, 오늘 이 단편선의 작가 앤드루 포터와 그의 글은 앞으로 나의 취향저격 문학취향 리스트에 들어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2.      어떤 글을 읽던 간에 누구나 그러하듯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소설속의 각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상상하게 된다. 어떤 글은 글의 색깔, 온도, 재질(?)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려나 싶은 그런 느낌들이 전해질 때가 있는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코네티컷 또한 읽는 내내 그런 느낌을 받았다.
 
비 내리는 조금 서늘하며 쌀쌀한 가을날에 다소 복작복작하게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크고 넓은 천장을 가진 카페에서 혼자 멍하니 있을 때.
 
또는 80%쯤 쳐진 커튼의 틈새로 들어오는 작고 희미한 해질녘의 빛으로 가득한 방안에서 조용히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워있을 때.
 
또, 졸업식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고 난 후, 텅-빈 교실에 가만히 앉아있다가 책상에 엎드린 채 차갑고 서늘한 책상의 온도를 느끼며 잔잔히 지난 3년을 회고할 때.
 
어떤 단어나 형용사로 쉬이 설명하기 어렵지만 누구나 만져지지는 않아도 유년기 이후 알게되고 깨닫게된 아프고 따뜻하고 애달프고 씁쓸하지만 좋았던 행복했던 느낌이었다.
 
 
3.     우리는 외롭다. 그런 외로움은 아마 평생 함께 할 것이다. 결혼을 하던, 충만한 삶을 살고 있던, 수 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 쌓여 있던 간에. 책 속의 헤더가 108~109pg에서 묘사한 것처럼 나는 때때로 이유를 알 수 없이 그냥 그저 너무 외롭고 공허해서 나를 아는 그 누군가도 아닌, 밖에서 길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만난 나를 잘 모르는 낯선이, 또는 몇 번 본 적 없지만 왜인지 마음이 잘 통할 것 같은 교양수업에서 본 사람에게 그저 한 없이 기대어 나의 마음과 속 생각을 토로하고 싶을 때가 있다. 
“ 이제 로버트와 나는 더 이상 물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들 삶의 내밀한 사정들을 나누기 시작했다-우리를 배신한 스러진 사랑들, 우리가 배신한 스러진 사랑들, 추억하기조차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유년의 순간들, 우리가 나누는 이런 대화에는 자유가 있었다. 우리가 그곳에서 하는 얘기는 절대 그 밖으로 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콜린에게 언급할 수 없었떤 일들을 로버트에게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일도,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어도 모두 다 말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 아파트에서 나누는 모든 말들은 그 바깥의 세상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을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108-109pg,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류포터, 21세기 북스
 
헤더가 로버트에게 그러했듯이 나 또한 그저 기대어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저 작은 포옹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따뜻한 온기를,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말들을 그리고 그저 묵묵히 나를 받아주는 긍정의 침묵들을 바랬던 적이 있다. 
 
 
4.
그렇지만 그런 욕구와 별개로 나는 이 소설속에 나오는 이런 종류의 사랑은 해본 적 없다. 그래서 나라면 어떨까 또는 이래서 이런 걸 꺼야 하고 완전히 재단하거나 판단하기는 사실 불가능하다. 주변에서 이런 종류의 사랑을 하는 어른들도 본 적 없다. 다만 소설의 기능이 그러하듯 나 또한 화자를 따라 간접체험을 할 뿐이다. 
 
 
5.
“ 다른 사람이 당신을 채워줄 수 있다거나 당신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 이 두 가지가 사실상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추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나는 콜린과의 관계에서 그런 식의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다만 그가 나의 일부, 나의 중요한 일부를 채워주고 있고, 로버트 역시 똑같이 중요한 나의 또 다른 일부를 채워주었다고 믿을 뿐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만큼 쉽게 파괴도 할 수 있는 나의 일부다. 그것은 닫힌 문 뒤에 있을 때, 어두운 침실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제일 편안하게 느끼는, 유일한 진실은 우리가 서로 숨기는 비밀에 있다고 믿는 나의 일부다.” 127-128pg,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류포터, 21세기 북스
 
그런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나를 채워 줄 수 있다거나 나를 구원해줄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이라는 것. 결국 나를 완전히 채우고 나를 구원 하는 것은 나 자신일 것이다. 그 누구도 나를, 나의 결핍과 나의 부재와 나의 온 마음 저 구속에 있는 내가 자각하지 못하는 곳을 속속들이 채워 줄 수는 없다. 다만 가끔 가끔 무너져버리는 마음의 작은 벽들이, 가끔 가끔 새어 나오는 결핍이, 그 벽들이 더 없이 위태하게 될 때 타인이 알아차리릴 수는 있을 것이다. 때로는 숨기고 감추려해도 그것이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날 정도로 심각해서 챙겨주게되고, 때로는 나와 가장 가까운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나는 힘들다고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나의 어떤 면모를 먼저 발견하고 알아차리게 돼서 나 모르게 나의 부족한 부분을 받쳐주는 것 일수도 있다.
 
 
6.
나는 너무나 작고 또 한 없이 약한 존재이기에 이렇게 수 많은 관계 속에서 부족함을 채움 받으며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지금보다 더 어릴 적에는 “나는 그 누구에게도 의지 하지 않고 살 수 있어. 나는 나로서 존재하고,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은 나 뿐이야. 나는 경제적으로도 독립하고 있으니, 나는 앞으로 점점 더 독립적인 사람이 될 거 같아.”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멋있고 대단해 보여서 그렇게 으스댔다. 부모님 집에서 살면서, 그냥 자기 생활비 정도 벌면서 말이다.
 
아무튼 내가 보기에 독립적이며 주체적으로 사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은 오롯이 스스로 온전하게 존재하고 스스로 오롯이 삶을 지탱하는 사람이라고 미화하여 존경하곤 했었다. 그게 진짜 멋있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실 그래보이는 사람들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타인에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안다. 
 
 
7.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자 끝이 보이는 관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헤더나 어머니가 이 관계 안에서 행복해 했었을지 이해한다. 끝이 보인다 해도 짧을지 길지 모르는 이 관계속에서 얻게되는 따스함과 안정감과 사랑, 그리고 부족한 부분들이 채워지는 것 같은 기분 등을 느끼며 그들은 잠시 행복했을 것이다.
 
 그 언젠가 들어본  “깨어나지 않을 꿈 속에서 영원히 잠들고 싶어요”, ”나를 영영 깨워주지 말아줘요. 이 안에서 오래도록 행복한 꿈을 꾸고 싶어요” 라는 노래처럼 깨고 나면 현실이고, 깨고 나면 오늘이 아닌 어두운 밤과 내일이 다가올 것에 불안해 하면서도. 슬퍼하고 아파 하면서도. 헤더나 나나 우리 모두 타인의 사랑과 보살핌을 원하는, 관계 속의 따뜻함과 온정을 갈구하는 작고 여린 존재이기에.
 
소설 속 화자들이 이렇게 오래도록 그 시절을 곱씹으며 회상하는지도 알 것 같다. 그들의 구멍난 부분을 채우게 하고 변화하게하고 성장하게 한 경험 이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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